성경과신학
2017.01.26 14:42

로이드존스의 종말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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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존스 종말론 1.(6장~13장)

종 말 론 Ⅰ.(6장~13장까지)

                                                                                                                  발제자: 박종진 목사


제6장 죽음과 불멸성    

1. 종말론은 무엇이며 왜 연구해야 하는가?

1) 종말론이 다루는 내용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의 삶 전체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미래는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운명, 개인적 미래에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세상 전체에는 어떤 일이 일어 날것인가라고 하는데 더 큰 흥미와 관심을 느낀다.

2) 오늘날 종말론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반과 19세기 말에는 종말론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과학 지식의 진보와 잘못된 추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음 이후의 삶은 없으며 , 이생에서의 삶과 세상만 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도 결국은 동물이며, 누군가 죽을 때 그것은 동물의 죽음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미래라는 더 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인생은 편하고 안락합니다. 하지만 1차 대전이 터졌으며, 그렇게 안전하고 그렇게 안정되고 그렇게 변치 않을 것처럼 보였던 삶들이 아무 실체가 없는 것이었음이 판명되었습다. 그리고 제2차 대전은 그 모든 상황은 한층 더 강화시켰습니다. 원자폭탄의 발명은 마지막 일들에 대한 연구를 크게 자극 했습니다.  




2. 죽음-개인적 관점의 종말론

1)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

첫째로 죽음은 단순한 존재의 단절이 아닙니다.

중요한 본문이 둘있다. 눅12:4~5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 하라”

마태복음 10:28절에서는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

누가복음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도 같은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다.

2) 우리는 왜 죽는가?

인기 있는 철학적 견해는 죽음은 삶에 내재 되어 있는 것으로서 삶의 과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생겨나고, 싹트고, 생장과 꽃이 피고,  성숙한 후에는 쇠퇴가 있는것처럼 말이다. 그안에는 죽음의 배아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죽음이란 죄에 대한 형벌이다. 죽음은 죄로 인해 들어 왔습니다. 창2장17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3:19절과 로마서 5장 의 가르침에도 등장 한다. 약1:14~15에는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3) 왜 그리스도인도 죽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견해

그리스도인은 결코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  사이비 종교, 인기 있는 신유 운동의 기초를 제공, 마8:17. 사53:4를 인용

그리스도인 신자도 불신자와 같이 죽어야 한다. 우리는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 몸이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 자세한 설명없이 속죄가 죄의 모든 결과를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은 질병 및 죽음과 연관하여 속죄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즉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긍극적으로 모두 그렇게 될것입니다.

질병과 죽음은 성화 과정의 일부이다

히12장 3~13절 시119편 “고난 당한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71절, 67절) 고전11장  성찬에 자신을 살피지 않은 사람들의 약하고 병들게 됨, 질병은 하나님의 징계과정의 일부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스도인들에 축복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해서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 놓은것과 같다.

신자는 죽음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전15장 55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은 일이나(빌1:21·22) ”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게14:13)”

4) 불멸성

불멸성에 반대하는 논증과 그에 대한 답변

먼저 성경은 불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존재로 간주한다

불멸성에 반대하는 논증  디모데 전서 6장 16절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구약에는 인간의 불멸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전도서“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낳기 때문이다(전9:4) 그러나 구약에는 죽은 자가 가는 스올이라는 장소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함

불멸성을 증언하는 성경 구절들

시편16:10~11“이는 죽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 16편 17편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욥기“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시73 편24절“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

구약 성경은 죽은 자와 접촉하지 말라고 한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 눅 12:4~5  주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로다(마22:32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자의 하나님이이시니라




제7장 조건적 불멸설과 제 2의 기회

1. 중간상태의 교리

다음 질문은 죽음과 부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중간상태의 교리라고 합니다

2. 중간상태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1) 모호한 존재 상태로서의 중간상태

2) 공통장소로서의 스올

신자와 불신자가 죽은 후에는 하데스 혹은 스올이라고 하는 공통의 장소를 통과한다는 가르침, 이곳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두 개의 구획이 존재, 하나는 아브라함의 품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받는 장소.    

3) 영혼수면설

하나의 개념은 소위 영혼의 수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죽을 때 수면 상태로 들어가 무의식이 되며 부활때까지 이같은 무의식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전 15:51“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시115“죽은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대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마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영혼수면의 근거로 인용됨.)

* 영혼수면에 대한 반론

성경은 우리가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의식을 가진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의 구절만 떼서 교리를 만들면 절대로 안된다. 변화산사건, 눅16장 부자와 나사로, 눅23장 십자가에서 회개한 강도, 고후5:8, 빌1:21, 계6:9~10 이와 같이 죽음이후 영혼이 수면이라는 교리가 완전히 비성경적이라는 증거가 많이 있다. 신자와 불신자 둘 다 의식이 있는 상태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자는 말할 수 없는 복락과 기쁨을 누리고 불신자는 고통의 상태에 있을 것이다.  




4) 조건적 불멸설(멸절설)

이 가르침은 점점 인기를 얻어가고 있으며 불신자의 영혼은 완전히 멸망하여 존재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 그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원래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죽어야 하지만 부분적으로 불멸성의 선물로 해석되는 영생의 선물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다른 사람들의 영혼은 그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 조건적 불멸설의 논거들

“오직 그에게만 죽지아니함이 있고”(딤전6:16)라는 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조건적 불멸설의 1차적 논거는 멸망, 멸망하다, 사망과 같은 용어들에 기초하고 있다. 멸망은 그야말로 멸망이며, 뭔가가 영원토록 멸망당하면서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멸망에 대해 말하는 살후1:9을 인용하면 그들은 그런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 성경은 영혼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창세기 첫구절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쭉 살펴보면 세상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 즉,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과 멸망을 겪게 된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는 인상을 절대로 받을 수 없다.

* 영원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지속됨을 의미한다.

* 주님 자신이 영원한 형벌을 묘사하셨다.

꺼지지 않는 불(막9:43~48), 구더기도 죽지않고 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이는 벌을 받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함을 시사한다.

* 조건적 불멸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와 같은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상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 기초해야 한다.




3. 제 2의 기회

죽음 이후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을까?

불신앙가운데 죽은 자들에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1) 제 2의 기회를 주장하는 근거

두 개의 본문이 이 견해를 뒷받침 해 준다.

첫 번째는, 벧전 3:18~20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참고 기다리실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두 번째 구절은 벧전 4:6이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 벧전 3:18~20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첫 번째,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으로서 사도들을 통해 초창기 교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말함으로서 이 구절이 주는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전파하는 사도들이 아니라 성령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설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장사지낸바 되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기 전에 하데스 영들에게 가서 회개하지 않는 죽은 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주님이 지옥에 내려 가셔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구원을 거부한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본문이 그런 의미라면 왜 노아시대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일까?

세 번째 설명은 이 구절들이 주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기까지 기간에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으로 가 구약시대에 죽은 의로운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가르침이다. 이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들을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2) 제 2의 기회에 대한 반론

* 성경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이 세상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눅16장 부자와 나사로, 요8:21, 마25장 세가지 비유

* 벧전 3:18~20의 올바른 해석

이 구절의 배경은 사도는 환란과 다가오는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초대교회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격려와 위로를 주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예를 보라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예수를 죽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 사람들은 기껏해야 너희 육체를 죽일 수 있을 뿐 영혼은 손대지 못한다. 베드로는 이어서 주님은 육체가운데 행하셨던 일을 영으로 계신 지금도 여전히 행하고 계신다고 주장한다. 전체 요점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극복하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홍수전에 주님의 말에 귀기울이고 홍수를 극복했던 노아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불같은 시련이 우리에게 닥칠지라도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안전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비록 육체로는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영으로는 살아계셔서 지금도 다스리시는 만유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 벧전 4:6의 올바른 해석

이 구절은 표면적으로는 죽음이후에 복음전파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누구든지 죽은 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그는 사실상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들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분명 그리스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육체로는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아계신 것처럼 그들도 살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로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실제로 안전하다. 너희도 마찬가지로 너희 구원을 확신하라.

* 제 2의 기회에 대한 결론

두 본문에는 죽음과 음부 너머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또다른 구원의 근거가 주어진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제8장 재 림 : 서론

1. 재림에 대해 고찰해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수없이 재림을 언급하고 있다.

2) 주님 자신이 재림을 가르치셨다.

마 24, 25장 살전․후, 막 13장, 눅21장의 병행 구절들 (슈바이처-주님의 재림)

3) 사도들도 재림을 가르쳤다.

행 1:7, 3:19~2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7:31, 벧전 3장, 야고보서, 요한계시록




2. 재림의 교리가 소홀히 여겨지는 이유

1) 영적 무기력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영적 무기력의 경향, 우리는 삶과 희생되는 경향이 있다.

2)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

첫째는 그것이 단지 죽음을 의미한다고 가르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이 오시는 것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들을 그리스도인이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요14:1~3)

두 번째 우리 주님의 오심을 성령이 오순절날 교회위에 그리고 교회안에 임했을때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한다. 요14,15,16장의 가르침에 근거해서이다. 주님은 오순절날 성령을 통해 교회와 자기 백성의 삶가운데 다시 오셨다. 그들은 성령에 대한 모든 언급을 이런 식으로 우리 주님이 영적으로 오시는 것으로 해석해야 된다고 말한다.

세 번째 재림에 대한 해석으로 매우 인기를 끌었던 개념은 그것을 오로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파괴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마24장, 막13장, 눅21장의 대응본문들을 보면 예루살렘 파괴와 우리 주님의 궁극적인 오심을 모두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의 오심을 유대민족의 국가가 멸망하는 것에 국한 시켰다.  

3) 그리스도인의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

그리스도인들이 터무니 없는 가르침에 대해 일종의 소심함과 신중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기와 때, 날자를 정해 놓고 심지어 시간까지 지정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상세한 이론들을 말하고 여러 가지 개념들을 만들어 내며 대단히 자신만만하게 독단적으로 말한다. 이런 일이 수세기 동안 계속 되었고 이런 교사들이 예언한 많은 날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셨고 분별있고 균형잡힌 사람이라면 이 일에 대해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3. 재림의 문제에 접근하는 바른 자세 - 균형

이 교리에 관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주의 하고, 배타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4. 재림에 대한 서론적 접근

1) 재림과 연관해 사용한 용어들

* 묵시, 현현, 파루시아, 하나님의 날, 그 날, 때로는 마지막날, 큰 날, 진노의 날, 심판의 날이라고 불린다.  이 용어들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다.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해주는 본문이 하나 있다. 살후 2:1~2절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여기서는 파루시아를 사용함-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 받았다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사도바울은 두 개의 다른 표현을 사용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주의 날”을 분명 같은 사건으로 강조한다.

2) 재림이 일어나는 방식

* 재림시에 주님은 인격적으로 오신다.

* 재림시에 주님은 육체적으로 오신다.

* 재림은 가시적인 사건이다.

* 재림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 재림시에 주님은 영광가운데 오신다.

* 재림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경건으로 인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말 할 때는 위대하고 강력한 사건 즉, 인격적이고 육체적이고 가시적이고 갑작스러운 오심, 영광스러운 나타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내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경건한 태도로 그에 대해 고찰하고 숙고하게 되어야 한다.(요일3:3)

3) 재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

반드시 올바른 길로 가기 원한다면 확실한 시금석이 있다. 그 연구가 여러분을 겸손하게 만든다면 당신을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 만일 그로인해 우쭐하게 되고 지성과 열정이 자극된다면 그것은 잘못 된 연구 방식이다. 그 연구가 당신으로 하여금 무릎 꿇고 예배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식의 연구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이해했다는 말하자면 당신의 이성으로 그 일을 해냈다는 자기만족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방식의 연구이다.




제9장 재림의 시기 : 징조들

1. 재림의 시기문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자세

1) 재림의 시기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거룩함으로 인도해야 한다.

2) 재림의 날짜를 확정하려 시도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살전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이어서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것을 지적한다. 막13:32에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 재림의 시기연구에 유념해야 할 원칙

  사도들이 주님께 던진 질문에는 그들이 자기들 생전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암시가 거의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글로서 그렇게 가르친 구절이 가르친 구절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그들은 주님께 질문을 할 때에는 그렇게 믿는 듯이 보였으나 절대로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구절은 표면적으로 읽었을 때,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주님이 즉시 돌아오시리라고 가르치는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런 구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 “때” 라는 용어를 사람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벧후3:8)

하나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우리는 이미 말세에 살고 있다.

3) 예언적 원근법

구약의 예언들을 읽어보면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말하자면 한 호흡으로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그가 어느 것을 말하고 있는지 매우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한다. 그 둘은 서로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예루살렘 파괴 기사에 대한 해석

세 가지 주요학파로 나누어져 있다. 주님이 단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멸망과 복음의 전파만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두 번째 학파는 주님이 분명 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주님은 주후 70년에 일어날 사건이 또한 시대의 끝이자 심판 날에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날 일에 대한 묘사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 사건을 사용하셨다.

세 번째 학파는 이 장들에서 우리 주님이 의도적으로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구절들은 주후 70년에 일어날 미래에 대한 문자적 기술인 반면 어떤 구절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일어날 문자적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다.

  

3. 재림의 징조

1) 이방인을 부르심

마24;14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막13:10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음. 롬11:25에서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언급하고 있다.

2) 이스라엘에 충만한 수가 모여듬

롬11장은 종말이 되기 전에 유대인들이 그 나라로 모여들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고후 3:15~16에도 같은 맥락에서 인용하는 비슷한 구절

*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이 일어날 것이다.

* 민족적 회심에 대한 논거들

  두 군데 본문이 제시된다. 마19: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 눅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 민족적 회심에 대한 반론들

  마8:11~12에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쫒겨나’ 마21장 두 아들의 비유, 마22:1~14에는 왕의 혼인잔치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비유, 눅13:6~9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로마서 11장의 세 가지 해석

  첫 번째 해석은 ‘온 이스라엘’ 이라는 바울의 말이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선택받은 사람들의 전체 숫자를 의미한다.

  두 번째 해석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이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 번째 가능한 해석은 ‘온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유대인의 총 수 즉 구원 받은 유대인의 총 수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오늘날 발견되는 한 가지 가르침 - 그것은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구속에서 특별한 위치에 특별한 지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제10장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1. “온 이스라엘”은 교회가 아니다.

롬 9~11장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매우 자주 사용되며 그럴 때마다 교회가 아닌 유대민족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이 일어날 것인가?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유대인들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을 것이며, 특별한 지위에 놓이게 되어 종말에는 교회와 유대민족이 있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일까? 유대인들은 교회와 구속받은 유대민족이라고 하는 두 무리가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1) 이 해석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른 방법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2) 민족적 회심에 대한 반론

* 구약의 예언은 신약교회에 적용된다.

* 구약의 예언들은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 주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 사도 바울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다고 말한다.

* 바울은 연대기적 순서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3. 로마서 11장 26절의 올바른 해석

1) 로마서 9~11장이 말하는 이스라엘은 남은 자, 즉 영적 이스라엘이다.

2) ‘온 이스라엘’은 유대인 가운데 부르신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3) 지금도 이스라엘을 민족적 의미로 이해하는 오류가 벌어지고 있다.

4) 모든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5)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방법은 동일하다.

유대인들은 설사 수많은 사람이 믿는다 해도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야 할 것이다. 그들은 제가 그래야 했던 것처럼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이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를 믿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다른 길은 없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제11장 적그리스도

1. 적그리스도와 관계있는 성경구절

1) 단 7장, 살후 2장, 계 13장에 나타난 적그리스도

각 본문에서 그들의 기원이 같다. 단7:8은 작은 뿌리 네 번째 짐승에서 나온다. 요한계시록에서 적그리스도의 통치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마지막 단계이고 데살로니가 후서의 불법한 자는 로마제국이 제거된 후에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둘째로 나타나는 시기가 같다.

셋째 그들의 종말이 같다. 셋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 시 마지막 심판 때 멸망당한다.

넷째 각 기사에서 그 인물은 종교적이고 동시에 정치적인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

다섯째로 세 기사의 인물은 신성모독을 전제로 한다. 작은 뿔은 큰말을 하는 입을 가지고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은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가지고 있으며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을 높인다.

여섯 번째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그들이 통치하는 기간은 똑같이 삼년 반이다. 다니엘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요한계시록은 ‘마흔 두 달 동안 일 할 권세’ 하지만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일곱째, 셋 모두 하나님의 백성과 전쟁을 벌인다.

여덟째, 그들은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각 본문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충성을 요구한다. ‘작은 뿔’은 자신을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와 때와 법보다 위에 놓는다(단7:21~25), 짐승은 무리들이 자신을 경배하게 하며(게13:12), 불법의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인다.(살후 2:4)

2) 이 본문들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의 특징

첫째 배도하는 일 즉 배교가 있을 것이다.

둘째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나라와 역사에 대적한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앉아 있으며

넷째 스스로를 신격화 한다. “자기를 하나님이라 내세우니라”

다섯째 신약에서 언제나 영적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계시되는 비밀이라고 말한다.

여섯째 그의 존재는 위장과 거짓 기적으로 가려져 있다.




2. 적그리스도에 대한 세가지 해석

주로 세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이 일이 이미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배교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전적으로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며, 예루살렘의 회복된 성전에서 자신을 높이고 성도들과 전쟁을 하는 어떤 유대인 혹은 이방인을 말한다고 한다.

세 번째 설명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본문들이 교황제도를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이다. 논증을 뒷받침하는 구절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살후2:4, 나아가 “막는 자가 로마 황제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3. 적그리스도에 대해 확실할 수 있는 내용들

적그리스도는 이미 사도바울과 요한의 시대에 활동하고 있다. 다니엘은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지닌 정치적 측면을 보여주는 방면 바울은 종교적 측면을 강조하며, 요한계시록 13장은 그 둘을 모두 볼 수 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정치적 권세를 땅에서 나온 짐승은 종교적 권세를 상징한다. 이 두 측면은 연이어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적그리스도가 궁극적으로 한사람에게 집중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끔찍한 권세를 가질 것이며, 택함 받은 자들까지 거의 속을 정도의 기적과 표적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권세에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되지만 교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악한 세력이 교회안에 역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엡6:12)




제12장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해석

1. 앞으로 다룰 내용

1) 연구의 대상이 될 성경 본문들

다니엘서 9장, 마태복음 24, 25장, 데살로니카전서 4장과 5장 일부, 데살로니카후서의 몇구절. 요한 계시록도 살펴보아야 한다.

2) 다양한 견해를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

가능한 서로를 돕는 것은 가르침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한가지 해석만 제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그것들을 평가해 볼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지침과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2.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가 제시한 새로운 해석

1830년에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해석파로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그 학파의 두 지도자는 에드어드 어빙 목사와 형제단의 설립자중의 한명인 경건한 존 넬슨 다비이다 그 두 사람은 이 예언 문제를 연구하고 논의하는 일련의 모임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글 결과로 새로운 학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가르침은 다비에게서 나왔고 무디는 다비의 가르침을 채택 하였다.

3. 다니엘서 9장의 배경

다니엘의 9장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본문중 하나이다.(에드워드 제이 영)

4. 일흔 이레

1) 일흔 이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은 이레”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일흔 주간(seventy weeks)”으로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흔 이레(seventy sevens)"가 옳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는 일흔 이레(seventy seven)입니다. 이레라고 언급한 기간이 있으며 , 장차 그 특정한 이레가 일흔번 있을 것입니다.

2) 예언을 해석할 때에는 감추어진 명확성에 주의해야 한다.

3) 일흔 이레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4) 일흔 이레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24절)

세 가지 소극적인 일 첫째는 “허물이 그치며”  둘째는 “죄가 끝나며” 세 번째는 “죄악이 용서되며(하해)”   세 가지 적극적 일 첫째는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둘째는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세 번째는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5) 이 일들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25~27절)

정확한 날짜를 지목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일흔 이레는 일곱 이레, 예순 두 이레,  한 이레로 나뉜다.

6) 논쟁의 핵심 : 일흔번째 이레

일흔 번째 이레는 언제 나타날 것인가.  26절은 일흔 번째 이레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것인가.  27절의 “그”는 누구인가

7)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의 견해

   에드워드 어빙과 다비로부터 유래된 견해는 유대인들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라는 견해이다.  그들은 예순아옵 이레와 일흔 이레사이의 간격에 이천년 이상의 교회 신대가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27절의  “그”를 26절에 언급된 장차 올 왕이자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8) 일흔 이레 해석의 핵심 쟁점들




제13장 다니엘서 9장의 결론과 은밀한 휴거

1. 간격이론

이 해석은 또한 예순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고 가르치며, 일흔번째 이레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순아홉 이레는 종결되었지만 일흔번째 이레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시대 전체가 끝나야 합니다. 그것이 소위 간격이론이다.(gap theory)

1) 27절의 “그”는 누구인가?

2) 27절은 미래의 사건인가?

3) 예순 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 긴 간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경해석이 아니다.

  예순 두 이레와 일곱 이레사이의 관계는 예순 아홉이레와 마지막 일흔번째 이레 사이의 관계와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다니엘서 9장 24~27절에 대한 다른 해석

1) 24절의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2) 26절은 AD70년에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예언이다.

3) 27절의 “그”는 은혜의 언약을 확증하시고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4) 이 본문은 성취된 예언이며 예순 아홉 이레와 일흔 이레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3. 성도의 사전 휴거

1) 사전 휴거, 혹은 은밀한 휴거란 말이 무엇인가?

* 두 단계의 재림

  1830년의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 주님의 재림은 두 단계로 이루어질 것이며 주님은 두 번에 걸쳐 오실 것이다. 첫 번째로 오직 성도들을 자기에게로 영접하기 위해 오실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도들을 거느리고 적그리스도를 멸망시키고 천년왕국 기간을 시작하기 위해 오실 것이다. 주님이 첫 번째 오실 때에는 은밀하게 오실 것이다.

* 사전 징조없이 임하는 은밀한 휴거

  은밀한 휴거는 사전에 아무 징조도 없이 어느 순간에라도 일어날 수 있다.

2) 이 가르침의 유래

* 에드워드 어빙의 계시

  그는 사도교회라는 새 교회를 세웠다. 그는 그 교회가 여전히 사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도직과 선지자직은 초대교회가 끝난 후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은 지금도 계시를 받고 예언의 말을 하고 스스로 계시라고 주장하는 가르침의 위험환상을 보고 방언을 해야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스스로 계시라고 주장하는 가르침의 위험성

  다비와 그의 추종자들 일부만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에드워드 어빙이 방언, 환상, 사도들 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거에 대한 가르침은 계속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3) 이 가르침의 근거와 반론

살전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 -그의 파르시아의 현현 혹은 그의 오심의 나타남-으로 폐하시리라”

살전 4:15~17, 행 1:11, 고전 15:23 등은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에 구절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 결 론

성경은 단 한번의 재림만을 말한다. 성경은 두 번이 아니라 단 한번의 강림만 있으며, 두 단계의 강림이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부활도 단 한번만 있다. 그러므로 은밀한 혹은 사전휴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주님은 아무 때나 오시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일들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4. 권고 : 종말의 문제를 연구하는 동기를 점검하라.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주님의 나타내심을 고대하며 그것이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복된 소망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 자신을 정결하게하고 밤과 어두움의 자녀와는 분명히 다른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임을 분명히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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