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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구원

 

선교사가 된 웨슬레

 

마침내 웨슬레는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성직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웨슬레는 선교사가 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을 떠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인디언들에게 전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웨슬레는 대서양을 건너면서 그 지루한 항해 중에도 자기의 종교 생활에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일과표를 만들어 놓고 힘써 행했습니다.

 

4 - 5시 명상과 기도

5 - 7시 경독회

8 - 9시 기도회

9 - 12시 성경연구

12 - 1시 간증시간

2 - 4시 전도

4 - 5시 저녁 기도회

5 - 6시 명상과 기도

6 - 7시 성경낭독회

7 - 8시 저녁예배

8 - 9시 설교

 

 

항해 중에 이같이 열심있는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까? 그는 요즈음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나 오락 같은 것에는 단 일분이라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매시간을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생활하려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돛단배로 긴 항해를 했습니다. 비바람과 사나운 파도에 얼마나 시달렸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석달 동안 이와 같이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이같은 열심에 대해 누가 탄복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누군들 그의 반이라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누군들 그의 반이라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명성있는 옥스포드 대학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까지 되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는 언어와 풍습과 생활습관이 다른 이방인에게 선교할 수 있는 모든 여건과 자격을 다 갖추었습니다. 온 영국을 통틀어 그와같이 진실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성공회의 성직자가 되었을망정 그는 정작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목사는 되었으나 정작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웨슬레도 여전히 구원얻지 못한 잃은 영혼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면 당신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같이 매일 빠짐없이 종교생활에 충실했던 웨슬레도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했다면 그 열심에나 그 지식에나 그 덕행에 있어서 도저히 그와 견줄 수 없는 당신이라면 당신의 참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그의 동생 찰스 웨슬레도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함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사로 자처하고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금 대서양을 건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열심과 목적으로 선교사가 되어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닙니까! 전도하고 설교하고 고생하고 수고하고 그리고 기도하고. 이 모두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원키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맛보게 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자신이 구원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들의 답답하고 괴롭고 불안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설교하는 두 사람의 목사!

 

구원얻지 못한 사람이 목사도 될 수 있고 선교사도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요 선교사이지만, 성경을 몇 십년 연구했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직자의 까운을 몸에 걸쳤어도 그 영혼은 여전히 불행한 어둠 속에 헤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능히 생각할 수 없는 고초를 능히 견뎌내고, 비록 모든 죄 문제를 깨끗이 하고 고결하게 종교생활을 함으로써 만인의 칭송을 들을지라도, 그 영혼은 그리스도를 만나본 적이 없고, 구원받은 기쁨과 평강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진실로 구원받았습니까?

 

웨슬레는 죽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다면 그와 같은 죽음의 공포가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공표, 이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본다면 자기 영혼의 상태를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함께 배를 탄 손님들 가운데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있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란 진젠돌프 백작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입니다. 이들 모라비안 교도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없다는 사실을 웨슬레는 깨달았습니다. 거센 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것같은 위험 가운데 놓일 때마다 웨슬레는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으로 안절부절 했지만 모라비안 교도들은 한결같이 변함없는 마음의 안정이 있음을 목도했습니다.

 

이에 대한 웨슬레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7시가 되어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오랫동안 관찰해 보았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 남달리 깊은 경건이 스며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겸손했다. 그들의 이와같은 꾸준한 겸손의 미덕은 배에 탄 다른 손님들을 위한 천한 잡무를 솔선해서 무보수로 맡아 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영국인들은 이런 일은 손끝도 까딱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 보수 없이 남의 천한 일을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저들의 교만한 마음에 좋은 참고가 되겠지요. 사랑하는 주님은 그들을 위해 이보다 더한 일도 하셨는데요'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들은 온유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짜증을 내고 분통을 터뜨리고 성을 낼 일도 많았는데도 그들은 언제나 온유했다. 남들이 그들을 떠밀고 구타하고 넘어뜨려도 그들은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자기 일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불평과 불만이라고는 조금도 들어볼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고 나서 또 한가지 사실을 더 발견했다. 그들은 두려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뻐기지도 않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혈기를 부리지도 않고, 악하게 대항하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서워하는 마음 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집회를 시작하려고 찬송을 부를 때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 위를 덮쳤다. 배의 제일 큰 돛이 산산조각이 났다. 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물바다가 되고 물은 갑판 위로 노도같이 밀려들었다. 깊은 흑암은 이미 우리를 삼켜버린듯 했다. 영국인들 선실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은 조용히 찬송을 계속 부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후에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죠.' '그러나 부인들이나 어린이들은 무서울 것이 아니겠어요?' '아닙니다. 우린 비록 연약한 아녀자라도 죽는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웨슬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도저히 이제까지 듣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웨슬레는 비로소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을 만난 것입니다. 중생한(거듭난) 성도들,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자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과 심령의 자세는 자기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겸손했고 온유했고 그리스도인다운 것이었습니다. 화내는 일이 없고 억울해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무서움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침착하고 조용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참으로 그들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풍랑 속에서 파선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웨슬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신은 지금껏 이런 체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친구여, 당신은 어떠합니까? 당신도 이런 체험에 대해서는 외인(外人)입니까? 당신도 지금 웨슬레처럼 이러한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입장입니까? 아니면 당신도 그들 모라비안 교도들처럼 그리스도를 생활 가운데서 간증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이신가요?

 

결국 웨슬레는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모라비안 교도의 한 전도자(모라비아 교도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피터 볼리 - 참고)가 몇가지 심각한 일신상의 질문을 하겠노라며 웨슬레에게 대답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 자신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내 형제여, 먼저 두어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형제의 마음 속에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요. 성령이 친히 형제의 영으로 더불어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신지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무어라고 대답할 말을 몰랐다. 이것을 눈치챈 그는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분이 세상의 구주인 것을 압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신 것을 아십니까?' 나는 대답했다. '그 분이 죽으신 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함인줄 생각합니다.' '그것을 스스로 확신하십니까?' '.' 그러나 나는 내 말이 허공에 뜨지 않았나 두려워했다."

 

이 얼마나 신기한 대화입니까! 의기양양하게 선교사로 미국에 건너온 성공회 목사와 겸손한 한 사람의 모라비안 전도자, 그들의 일문일답을 듣고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섬광같이 번쩍 비취는 그 무엇이 없습니까?

 

"형제의 마음 속에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요? 성령이 친히 형제의 영으로 더불어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시는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질문이 당신의 마음을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 안에는 증거가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웨슬레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첫마디 질문부터 그를 완전히 침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당신이 기독교인이냐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였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구주인 줄을 압니다."

 

이것은 웨슬레가 잠깐 망설인 수에 한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말은 그 누군들 대답 못하겠습니까?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라면 그가 강도이든 혹은 술주정뱅이이든 그런 대답은 능히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가, 아니 웨슬레 같은 사람이, 많은 학문과 열심과 경건을 겸비했던 웨슬레가 가까스로 그것 밖에 더 대답을 못한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러자 다시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신 사실을 아십니까?"

 

당신을 구원하신 것을 아십니까? 물론 그분은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습니까? 구원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웨슬레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이 죽으신 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함인줄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슨 대답입니까? 그는 단지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없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까?

 

모라비안 전도자는 이어서 질문했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확신하십니까?"

 

"."

 

웨슬레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허공에 뜨지 않았나 두려워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독자여, 당신은 어떻습니까? 구원의 체험이 없는 선교사가 여기 한 사람 있습니다. 당신도 혹시 이 선교사처럼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웨슬레는 2년 동안 선교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실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되돌아오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을 떠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디안들을 건지기 위해 나는 미국으로 갔다. , 그러나 누가 나를 건질소냐! 이 믿지 않는 악한 마음에서 나를 건져줄 자 누구인가! 나의 종교는 한여름날의 종교다.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만 없으면 나는 자신이 있고 장애물이 없다. 그러나 죽음이 나의 면전에 나타나면 내 심령에 풍파가 이는구나! 그러니 어디인들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말이 나올 것인가."

 

이것이 웨슬레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누가 나를 건질소냐?"

 

수년 동안 신학을 하고, 수년 동안 설교를 하고, 그리고 또 미국에 건너가 인디안들을 건지려던 웨슬레가 자기 자신을 건져야만 했으니! 결국 미국에 간 것은 남을 건지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건지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자기를 건지기 위한 노력으로 영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 누가 나를 건질 것인가!"

 

이것이 당신의 탄식은 아닙니까?

 

당신의 신앙생활은 당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까?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확실한 답변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구원을 깨달은 웨슬레

 

영국에 도착한 웨슬레는 다행히도 한 사람의 모라비아 전도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피터 볼레르(피터 볼리)'라는 전도자였습니다. 그와 교제를 나눈 결과 자신에게 전혀 구원얻는 믿음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멸망받을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로소 시인한 것입니다. 마침내, 결국 목사도 아니요, 선교사도 아니요, 그리스도인도 아닌, 벌거벗은 한 죄인의 위치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추구해 왔던가요! 그러나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구원얻는 믿음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설교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도 분명히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소유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를 볼레르 전도자와 의논했습니다. 이에 대해 볼레르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자신이 믿음이 생기기까지 믿음에 대해서 설교하시지요. 그래서 믿음이 생기게 되면 다음은 믿음을 얻었기 때문에 믿음에 대하여 설교하시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최고 학부를 나온 목사, 그러나 상한 심령을 부둥켜 안은 성직자, 친구 전도자의 충고를 듣는 그 간절함을 보십시오. 웨슬레는 그래서 강단을 버리고 감옥 전도에 나섰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웨슬레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인 6일에 나는 이 새 교리를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내 심령은 이 전도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전도였다. '믿음으로써 얻는 구원'에 대하여 내가 처음으로 증거한 사람은 사형 집행일을 앞둔 한 사람의 사형수였다."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그리고 열심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종교인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던 웨슬레, 이제 그 모든 애씀과 노력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 아닌 믿음으로써만 얻는 구원을,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죄인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독자여,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을 눈 앞에 둔 한 죄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죄인은 감옥에 갇혀 자유가 없는 죄인입니다. 선행을 쌓고 자기의 공로를 쳐다본다는 것은 이 죄인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이 죄인이 구원얻을 길은 무엇일까요! 독자여, 이것이 바로 당신의 실상이 아닌가요?

 

당신은 지금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언도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당신은 죽습니다. 왜 그런가요? 당신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6:23).

 

사람 앞에서는 선언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아닌 사람이 천하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당신은 지금 죄 속에 갇혀 요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몸이고 사형을 면할 도리는 전혀 없습니다. 완전히 무력한, 꼼짝할 수 없는 바로 이 죄인과 같은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 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제 눈을 돌려 웨슬레를 보십시오. 구원받지 못한 전도자, 그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사형수에게 전해주려는 것입니다. 그 자신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으나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자기 앞의 그 사형수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웨슬레는 이 순간까지 사형수는 커녕 그 어느 누구에게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전해보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희망이 있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은 일찍부터 부모의 무릎에서부터 들으며 자라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즉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웨슬레도 구원이 사람의 공로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믿는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알아오고 믿어오던 것과는 너무나 엄청나게 판이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웨슬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최종적인 결정이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웨슬레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볼레르 전도자가 말한 사실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질수 수 있는 일인가? 어떻게 믿음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사랆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당장 사람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와 육의 비참한 처지에서 의 가운데로, 그리고 성령의 기쁨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도행전을 읽었다. 그런데 나의 놀라움은 너무나 컸다. 성경의 모든 사실 하나 하나가 모두 순간적으로 구원얻은 그것만을 기록한 것이고 그 외 달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구원이 믿는 그 즉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요한 웨슬레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이성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이런 말을 들을 때 이단이라고 당장 일축해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모라비안 교도들과 접한 후 감화를 받은 그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 있는 웨슬레에게 역시 피터 볼레르가 안내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서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숱한 증인들을 직접 대면케 해주는 것만으로써도 족한 것이었습니다. 웨슬레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주일날에도 역시 나는 이 살아있는 간증들을 접하게 되었다. 나의 완고한 고집은 다시 무너져버렸다. 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는 다음에야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을 의지하는 믿음을 순식간에 주신 것과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와 공포에서 성결과 평안으로 그 즉시에 이르게 하신 사실들을 증언했다.

 

나는 이 이상 더 의심할 수 없었다. 오직 나의 부르짖음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용서해 주소서' 하는 것 뿐이었다."

 

과연 웨슬레의 마음은 진실했습니다. 분명한 증거에 부딪히자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거듭난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한결같은 그들의 간증은 믿는 즉시로 구원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더 변론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 웨슬레는 새로 발견한 이 믿음을 자기의 교단에서 두려움 없이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아직 그만한 체험을 얻지 못했지만 누구든지 믿는 순간에 구원이 이루어짐을 거리낌이 없이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교회는 하나 둘씩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아무 교회도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강단을 지키는 엄연한 성직자이면서도 자기 교회에서 성직자 대접을 못받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가르쳤지만 진리와 그 진리 전파자는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 자신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순간, 중생에 대한 경험을 맛보는 순간이 마침내 왔습니다. 그의 구원얻은 간증을 들어보겠습니다.

 

"알드즈게이트 가에서 저녁 집회가 있었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으나 그러나 나의 발걸음은 그곳을 향했다.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누가(윌리엄 홀란드 - 참고) 읽고 있었다. 시간은 9 15분 전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 감동이 왔다. 내가 지금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 나의 구원에 대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확신이 생겼다."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그리고 영광입니까! 또 얼마나 놀라운 경험입니까! 그는 이 순간의 정확한 시간을 알았습니다. 9 15분 전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노력도, 공로도 필요 없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자기의 죄가 사함받았다는 것, 하나님께서 영원히 자기의 죄를 도말하셨다는 것, 그것을 믿은 것입니다. 구원이 믿는 즉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인은 하였으나, 시인했을 뿐만 아니라 설교까지 하고 교회에서 배척을 받았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을 때 마침내 영광스러운 순간이 왔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 요한 웨슬레의 산 믿음의 열매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마음의 평강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에서의 해방이었습니다. 평안에서 우러나오는 희열과 성결이었습니다.

 

독자여, 당신의 경험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평안이 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까? 당신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성결합니까? 죄의 권능을 벗어버렸습니까?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지워버리셨다. 지워버리신 그 죄의 권능마저 없이 하셨다. 옥문을 깨뜨리시고 나를 해방시키셨다."

 

당신의 생활에 있어서도 죄의 결박과 사슬을 모두 끊어주셨습니까? 당신의 마음은 깨끗합니까?

 

이 모든 일을 주께서 요한 웨슬레를 위하여 이루셨다면 당신을 위해서도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 구원얻은 숱한 무리들의 영적 모범이었던 요한 웨슬레가 이렇게 하여 새생명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심과 열심과 행사를 논할 것같으면 사도 바울에 못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바울은 산헤드린의 회원이었고 웨슬레는 영국 국교회의 안수받은 성직자였을 뿐입니다. 두 사람 다 많은 교육을 받았고, 두 사람 다 종교적으로 극히 헌신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구원받지 못했고 중생하지 않으면 안될 죄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그 영혼은 여전히 구원을 받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다면 독자여,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영으로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친히 증거하십니까?

 

기독교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웨슬레야말로 누구보다 앞장서서 할렐루야를 선창했을 것입니다. 어디 웨슬레 뿐이겠습니까? 그럴 사람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구원의 체험이 없는 기독교 신앙은 열매없는 껍데기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기독교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고 종교생활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생명이 없는 종교인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닙니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삽니까?

 

부디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구원>(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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